진료실 안에 갑자기 흘러간 대중가요가 간들어지게 들려 어리둥절하여
두리번 두리번 살피는 데 진료 받으실 할머니가 슬그머니 낡은 가방 안
에서 휴대폰을 끄내 보더니 두말 없이 다시 집어 놓으시고 모르는 척,
허리가 아프고 팔다리가 쑤시고 온통 종합병원같다고 하소연을 하신다.
계속되는 푸념 속에도 휴대폰은 계속 처량하게 연신 노래를 쏟아 놓고
있기에.. 참다 못해, 할머니 전화받으세요.. 하니 며느리한테 온 전화인데
미워서 안받는다며 신경 끄라신다. 명절에 무언가 며느리 때문에 심기가
불편하셨나 보다.
ktx으로 내려오면 될것을 서울에서 부산오는데 꽉꽉 막히는 교통체증으로
8시간을 아들 자동차 안에 갇혀 무릎관절과 허리 디스크가 재발했다며 힘
들어 하시면서도 아들의 성의 때문에 불평도 못하시고 아파하시는 어르신,
노랗게 질린 젊은 아낙의 얼굴에서 명절로 마음 고생, 몸 고생이 묻어나고 ..
명절이 지나고 나면 젊은 아낙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명절로 인하여 생긴
이런 저런 병들을 안고 내방하는 경우가 흔하다. 명절로 인해 음식을 만들
어야 하고, 많은 가족들 챙겨 먹여야 하고 할 일이 한 둘 아니기 때문이기
도 하지만 매일같이 하던 일을 쉬고 멀리 가서 가깝지만 먼 사람들과 하루
이상 부대끼며 보내야 하니 반갑지만 마음에 부담이 될 것이다.
게다가 그동안 안 보던 친지들을 만나는 것은 그 자체로 엄청난 스트레스일
것이고, 얼굴 마주칠 일이 없어서 잊고 있었던 여러 가지 갈등 요소가 되살
아나기 때문에 긴장도 고조된다. 평소라면 그냥 넘어갔을 일이나 말 한 두마
디가 이때는 오히려 마음에 큰 상처가 될 수도 있다. 심한 심적 부담감 과
육신적인 피로감의 결과 일 것이다.
그러나 도란도란 서로의 안부를 물어가며 너나없이 덕담을 주고받는 가족
친지들 틈새로 별로 말씀은 없지만 언제나 그윽하게 바라보시며 이것저것 한
사람도 빠짐없이 챙기며 자상하게 살피시는 부모님으로 말미암아 세상의 하루
가 이렇게 기쁘고 평온하다는 것도 알게 해주는 것이 넉넉한 추석명절이도 하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 추석만 되면 한번쯤은 듣는 말이다.
더없이 풍성한 명절의 넉넉한 인심을 한가위에 비유하여 기리는 말일 터..
손에 바리바리 선물 꾸러미 싸들고 고향 으로 가고 오는 사람들의 마음 또한
이 같을 것이다. 경기가 어려워 달갑지 않은 명절인 사람도 있을 것이지만 그
래도 마음 한구석은 고향 생각에 눈시울을 적실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