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맛을 느끼기에 맛없음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퇴
색된 것을 보기에 채색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또한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체험이 있을 때 더욱 잘 볼 수
있게 된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우리는 한층 명료한 시각을 얻게 되
고 영혼의 감수성은 더욱 예민해진다. 우리는 존재와 비존
재 사이에서 가장 좋거나 나쁜 체험을 한다.
쇠창살 안에 갇힌 사람들은 이전에 미처 깨닫지 못한 자
유의 소중함을 갑자기 알게 된다. 아버지를 잃은 아들의 눈
물은 부재의 고통보다 아버지가 생존해 계실 때 효도를 다
하지 못했다는 회한의 눈물이다.
우리는 삶이 쇠잔해짐을 느낄 때 비로소 그 강렬함을 깨
닫는다. 무언가를 상실했을 때 비로소 제대로 볼 수 있게
되고, 우리가 잃어버릴 수 있는 것들을 중시하게 된다. 상
실한 상태의 삶은 스스로에게 불행을 선고하는 것과 같다.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것처럼, 어떤 것도 이룰 수 없는
것처럼 살아가는 삶의 색깔은 잿빛이고, 그런 일상에 따라
붙는 것은 고통과 갈등뿐이다.
메마른 삶! 우리는 메마른 삶을 통해 현실을 더 잘 이해
할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서 상상해 보라. 우리를 환영
하는 몸짓, 아침 인사를 건네는 반가운 목소리, 우리를 쓰
다듬는 손, 뽀뽀해 주는 입술의 사랑의 징표를 떠올려 보
라.
무엇이라도 상상해 보라. 메말름은 우울하고 슬픈 모습
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것이다. 메마름을 체험하는 이들은
슬프고 일시적인 것을 영원한 것으로 바꾸기도 한다.
메마른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노동과 사업이라는 냉
엄한 일상만 바라볼 뿐이다. 그들은 주변 사람들을 더 이
상 사랑하지 않는다.
이렇게 사랑하지 않을 때 상대방의 생명과 자유를 앗아
버린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 상대방을 덜 사랑할수록 그의
생명과 자유는 줄어든다.
어둠이 삶을 침범할 때 우리는 비로소 빛에 가치를 부여
한다. 갇힌 자가 되었을 때 비로소 참 자유가 무엇인지 이
해한다.
죽음의 냄새가 코를 스칠 때 우리는 생명을 향해 발버둥
친다. 우리는 존재와 비존재가 교차하는 지점에 설 때에야
상실했던 목표를 다시 세우고, 삶에 다시 시동을 걸어 긴
여행에 나선다.
촛불을 꺼버린 바람이 바로 그 불꽃을 다시 일으킬 수
있음을 우리는 하루빨리 깨달아야 한다.
